겉으로 보기엔 분명 잘하고 있는 상황인데, 정작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다. 성과가 있고, 주변에서도 인정받고 있는데 스스로에게는 늘 부족한 점만 보인다.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지”, “운이 좋았을 뿐이야”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칭찬을 들으면 어색하고, 성취를 인정받으면 괜히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런 태도는 겸손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깝다. 스스로를 낮추는 말이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잘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낯설다. 잘해낸 결과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 마음속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이 생긴다. 마치 그 평가를 계속 유지해야 할 책임이 생긴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이유는 자존감이 낮아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기준이 높은 경우에 더 자주 나타난다. 기준이 높을수록 지금의 성과는 ‘아직 부족한 상태’로 분류된다. 만족은 도착 지점이 아니라, 계속 뒤로 밀리는 목표가 된다. 그래서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는 늘 미완성처럼 느껴진다.
이 심리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이 있다. 기대를 낮추는 방어다. 스스로를 낮춰두면, 주변의 기대도 함께 낮아질 것이라고 느낀다. 그러면 혹시라도 실수하거나 결과가 나빠졌을 때 받을 실망을 미리 줄일 수 있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은 이때 자책이 아니라,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가 된다.
이 구조는 과거의 경험과도 이어져 있다. 잘했을 때보다 못했을 때 더 강하게 평가받았던 경험, 기대에 맞추려다 부담을 느꼈던 순간들이 쌓이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눈에 띄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잘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건 기쁨보다 불안이다. “이걸 계속 유지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먼저 나온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성취보다 안정이 더 중요해진다. 잘해내는 것보다,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게 우선이 된다. 이때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는 안전한 위치를 지켜준다. 튀지 않고, 기대를 받지 않고, 평가의 중심에 서지 않게 해준다.
하지만 이 습관이 오래 이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성과는 쌓이는데, 자기 인식은 그대로 머문다. 주변의 평가와 자기 평가 사이의 간격이 점점 벌어진다. 그 차이를 설명하지 못하면, 사람은 칭찬을 부정하거나 상황 탓으로 돌린다. “이번엔 우연이야”라는 말이 반복될수록, 자신에 대한 신뢰는 자라지 않는다.
이 장면을 계속 보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이 보인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은 자신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한다는 점이다. 기대와 부담, 평가로부터 한 발 떨어져 있으려는 선택이다. 그래서 이 습관은 고치기보다는 이해가 필요한 부분에 가깝다.
잘하고 있는데도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를 무조건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다만 그 태도가 나를 보호하고 있는지, 아니면 나를 계속 같은 자리에 묶어두고 있는지는 한 번쯤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정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인정하지 않아서 멈춰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이 입에 익어 있다는 건, 그만큼 오래 조심하며 살아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 조심성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같은 방식이 필요한지는,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 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