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선택의 순간마다 스스로를 꽤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정보를 찾아보고, 장단점을 비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까지 들었다면 충분히 고민한 선택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선택 과정을 다시 떠올려 보면, 정말 처음부터 열린 상태였는지 의문이 생길 때가 많다. 애초에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사람은 선택을 앞두고 완전히 중립적인 상태가 되기 어렵다. 이미 과거의 경험, 감정, 기대가 섞인 초기 판단이 존재한다. 이후에 하는 정보 탐색은 이 판단을 수정하기보다는 확인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마음에 드는 정보는 꼼꼼히 읽고, 불편한 의견은 대충 넘기거나 기억에서 지운다. 그렇게 남은 정보들로 우리는 “나는 충분히 검토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논리가 아니라 안정감이다. 선택을 다시 고민한다는 건 지금까지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는 생각보다 큰 불안을 동반한다. 그래서 사람은 선택을 바꾸는 대신, 선택을 정당화하는 쪽을 택한다. 그 편이 훨씬 덜 흔들리고,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선택이 끝난 뒤에도 이 심리는 계속 작동한다. 결과가 좋으면 우리는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게 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상황이나 외부 요인을 설명으로 끌어온다. 중요한 건 결과의 정확성보다, 선택한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 사람은 자신의 판단보다도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걸 더 두려워한다.
이런 모습은 일상 속에서 반복된다. 병원을 고를 때, 직업을 선택할 때, 사람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이미 마음이 기운 상태에서는 같은 정보라도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내 생각과 맞는 말에는 안도감을 느끼고, 다른 의견에는 괜히 거부감이 생긴다. 이 감정의 차이가 이미 답을 정해두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이 장면들을 자주 마주하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택 이후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선택의 정확성보다 선택 이후에 느낄 감정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 판단은 점점 한 방향으로 굳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심리가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는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에 가깝다. 모든 선택을 끝없이 의심하며 산다면 삶은 지나치게 불안정해질 것이다. 문제는 이 구조를 인식하지 못한 채 반복할 때 생긴다.
선택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완벽하게 객관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 내가 정보를 찾는 이유가 판단을 넓히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정한 답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한 번쯤 질문해보는 것이다.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선택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 달라진다.
우리는 종종 선택의 결과에 집착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선택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선택했다고 믿는 인간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다음 선택에서는 조금 더 여유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다. 선택은 언제나 완벽할 수 없지만, 그 불완전함을 인식하는 태도는 분명 다른 선택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