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것도 심리적 방어일 수 있다

심리학

사람을 잘 믿는 편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경계를 많이 두지 않고, 상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주변에서는 순하다고 말하거나, 가끔은 너무 쉽게 믿어서 손해를 본다고 걱정한다. 그런데 이런 성향을 단순히 순진함이나 판단력 부족으로만 볼 수 있을까.

사람을 쉽게 믿는 태도는 종종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선택에 가깝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말과 행동을 분석하고, 숨은 의도를 추측하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이 과정은 늘 긴장을 동반한다. 반대로 믿어버리면 관계는 단순해진다. 갈등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고, 마음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쉽게 믿는 태도’는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가 아니라, 불안을 줄이기 위한 방식일 수 있다. 사람을 믿지 않으면 계속해서 판단해야 하고, 판단은 곧 책임으로 이어진다. 믿어버리면 판단의 부담은 상대에게 넘어간다. 문제가 생겨도 “속은 내가 아니라 상대가 문제였던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이 구조는 관계에서 자주 반복된다. 상대의 말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져도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괜히 의심해서 관계가 틀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믿고 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 선택은 겉으로 보기엔 개방적이고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강한 욕구가 숨어 있다.

사람을 쉽게 믿는 이들 중에는 갈등을 매우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다. 의심은 대화를 필요로 하고, 대화는 충돌 가능성을 만든다. 반면 믿음은 질문을 줄인다. 질문이 줄어들면 마찰도 줄어든다. 그래서 믿음은 관계를 지키는 수단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이 방식이 항상 나를 보호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 심리는 과거의 경험과도 연결된다.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던 사람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더 쉽게 믿는 경우가 있다. 더 이상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깊이 따지고 들어가다 다치는 것보다, 처음부터 단순한 구조를 선택하는 쪽이 덜 아프게 느껴진다. 믿음은 이때 방어가 된다.

이 장면을 지켜보며 느낀 건, 사람을 쉽게 믿는 태도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에서 나오는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불확실함을 견디기 어려워서 택한 믿음이다.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그 안의 긴장도는 전혀 다르다.

후자의 경우, 믿음이 깨졌을 때 충격은 더 크게 돌아온다. 애초에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비가 없고, 스스로에게도 화가 난다. “왜 또 이렇게 쉽게 믿었을까”라는 자책이 남는다. 하지만 이 자책은 문제의 핵심을 비켜간다. 문제는 믿음이 아니라, 그 믿음을 선택한 이유다.

사람을 쉽게 믿는 자신을 무조건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다만 그 믿음이 타인에 대한 신뢰인지, 아니면 갈등과 불안을 피하기 위한 선택인지 한 번쯤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같은 행동이라도 출발점이 다르면, 그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사람을 믿는다는 건 용기일 수도 있고, 방어일 수도 있다. 그 차이를 가르는 건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내가 무엇을 피하고 있는지 알게 되는 순간, 믿음은 더 이상 자동 반응이 아니라 선택이 된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