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손해인 선택이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은 같은 결정을 반복한다. 이미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음에도, 다시 비슷한 길을 고른다. 이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또 같은 선택을 했을까?” 판단력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일까. 하지만 이 반복에는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가 있다.
사람에게 가장 큰 기준은 이익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이다. 손해를 보더라도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되는 선택은 마음을 덜 불안하게 만든다. 반대로 이익이 될 수 있어도 결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선택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사람은 더 나은 선택보다, 이미 겪어본 선택을 택한다. 손해가 익숙함을 이기지 못하는 순간이다.
익숙한 선택에는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실패했을 때 스스로를 덜 비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 이런 결과가 나올 줄 알았어”라는 말은 선택 이후의 감정을 완충해 준다. 반면 새로운 선택에서 실패하면, 결과뿐 아니라 선택 자체가 문제로 남는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사람은 실패보다 자기 비난을 더 두려워한다.
이 심리는 일상 곳곳에서 드러난다. 불만이 많은 직장을 계속 다니거나, 만족스럽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거나, 비효율적인 방식이라는 걸 알면서도 같은 방법을 고수하는 모습이 그렇다. 바꾸지 않는 이유는 몰라서가 아니라, 바꾼 이후의 불확실함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손해는 계산할 수 있지만, 불확실함은 계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정체성이다. 반복된 선택은 어느새 ‘나답다’는 감각과 연결된다. 익숙한 방식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일부가 된다. 그래서 그 선택을 바꾸는 일은 행동 하나를 바꾸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수정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때 변화는 손해보다 훨씬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 구조 속에서는 합리적인 조언도 잘 작동하지 않는다. 손해를 수치로 보여주거나, 더 나은 대안을 설명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감정의 안전성이다. 사람은 손해를 감수할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이 흔들리는 감정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장면들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한 가지 결론에 닿는다. 사람은 이익을 위해 선택하는 존재라기보다, 불안을 관리하기 위해 선택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이 덜 흔들리는 쪽을 택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래서 같은 선택은 계속 반복된다.
이 사실을 이해하면 반복되는 선택을 무작정 비난하지 않게 된다. 왜 바꾸지 못하는지를 묻기 전에, 그 선택이 나에게 어떤 안정감을 주고 있었는지를 먼저 바라보게 된다. 손해를 보면서도 유지해온 선택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인식하지 못한 채 변화를 시도하면, 결국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선택을 바꾼다는 건 더 나은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더 큰 불확실함을 감당하겠다고 결정하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변화는 언제나 어렵다. 손해를 보는 선택을 반복하는 건 어리석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의 나를 지키기 위한 방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