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는 자신을 미워한다. 실수한 일을 떠올리며 밤새 후회하거나, 거울 속 모습을 보며 한숨 쉬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낮춘다. 누가 나를 비난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에게 더 가혹한 말을 던진다. 나는 왜 이럴까. 왜 나는 늘 부족할까. 왜 나는 이런 실수를 반복할까. 마음속에서 계속 들리는 목소리는 책임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혐오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자기혐오가 한 번이 아니라 반복된다는 것이다. 마치 습관처럼 찾아오고, 멈추고 싶지만 더 깊어질 때도 있다. 왜 그럴까.
심리학과 뇌과학은 이를 익숙한 감정의 중독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감정보다 익숙한 감정을 선호한다. 익숙함은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뇌는 안전하다고 느낀다. 자기혐오는 기분을 상하게 하지만 뇌에게는 익숙한 감정의 패턴이 될 수 있다. 반복되는 자책과 비난은 회로를 강화하고, 강화된 회로는 다시 감정을 끌어온다. 이렇게 감정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정체성이 된다. 나도 모르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믿는다.
과거 경험도 영향을 준다. 어린 시절 비난을 많이 들었던 사람, 실수에 대해 지나치게 지적받았던 사람, 감정을 표현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사람은 자신을 대하는 기준이 엄격해진다. 인정보다 비판이 익숙해지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작은 실수에 과도하게 반응하고, 잘한 것보다 못한 부분에 시선이 고정된다. 뇌는 과거의 패턴을 재현하려 하고 익숙한 감정을 찾아가려 한다.
자기혐오는 완벽주의와도 연결된다. 기준이 높을수록 실망할 가능성도 높다.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자책이 시작된다. 기준을 낮추기보다 자신을 낮추며 문제가 나에게 있다고 결론 내리기도 한다. 이런 사고는 일시적으로 통제감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책임을 지는 것과 자신을 공격하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둘을 자주 혼동한다.
자기혐오가 반복되는 이유는 또 있다. 자책은 이상하게도 마음의 균형을 맞추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잘되면 불안하고, 행복하면 어색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좋은 일이 생겼다 해도 혹시 나중에 안 좋은 일이 올까 걱정하고 스스로를 낮추며 대비하려 한다. 나를 미워하면 오히려 안전해진다고 느끼는 것이다. 실패하면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할 수 있도록 미리 스스로를 공격한다. 기쁨을 오래 허락하지 못하고 불행에 더 익숙해하는 이유다.
자기혐오의 문제는 감정보다 사고 방식에서 온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비판과 실망에 고정되어 있을 때, 어떤 성취도 만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해도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면 마음은 계속 허전하다. 만족이 아닌 결함에 집중하는 사고는 뇌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회로이며, 반복될수록 강화된다. 결국 뇌는 자기혐오라는 감정을 자동으로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다행히도 감정의 습관은 바꿀 수 있다. 첫걸음은 인식이다. 자신을 비난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를 사실처럼 받아들이지 말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지금 나는 나를 공격하고 있구나. 이 생각은 감정이지 진실이 아니야. 사실과 감정을 분리하면 감정의 파도는 조금 잦아든다. 생각과 나 사이에 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둘째로 자기 연민의 태도가 필요하다. 자기 연민은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해와 따뜻함을 건네는 태도다. 나는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런 말은 뇌가 새로운 감정 회로를 만들도록 돕는다. 처음엔 어색해도 반복하면 익숙해진다. 비난이 익숙했던 것처럼 이제는 이해가 익숙해질 수 있다.
셋째로 긍정적 경험을 의식적으로 저장해야 한다. 작은 성취라도 기록하고, 나의 장점을 찾고, 한 줄이라도 스스로를 칭찬하는 습관이 도움이 된다. 뇌는 반복되는 자극에 반응하므로 긍정적 기록이 쌓일수록 긍정적 감정 회로가 단단해진다. 스스로를 미워해왔던 시간이 길었다면 회복도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방향만 바뀐다면 변화는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자기혐오가 깊은 사람일수록 사실은 마음이 섬세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에게 가혹한 이유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며,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혐오는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노력의 반대편에서 생긴 그림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림자만 보고 자신을 어둡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빛이 있기 때문에 그림자가 생긴다는 사실을 잊는다.
우리는 익숙한 감정에 머물 수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감정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익숙함이 중독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새로운 감정도 습관이 될 수 있다. 자기혐오에서 자기 이해로, 비난에서 인정으로, 공격에서 따뜻함으로 감정의 방향을 바꾸는 선택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뇌는 우리가 반복하는 대로 변한다. 오늘 단 한 번이라도 자신에게 부드러운 말을 건넸다면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