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을 내리기 직전이나, 이미 어떤 행동을 한 뒤에 자주 떠오르는 말이 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아주 확신에 찬 문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안에 휘둘리는 말도 아니다. 이 말은 흔히 타협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균형을 찾기 위해 꺼내 드는 문장에 가깝다.
사람은 선택 앞에서 늘 두 가지 감정 사이에 서 있다. 하나는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더 이상 흔들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이때 “이 정도면 괜찮다”라는 말은 그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실패도 아니라는 위치를 만들어준다.
이 문장이 자주 등장하는 순간은 기준이 흔들릴 때다. 처음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바뀌고 에너지가 줄어든다. 그럼에도 목표를 완전히 내려놓고 싶지는 않다. 이때 사람은 기준을 살짝 낮추는 대신, 스스로를 설득하는 쪽을 택한다. 기준을 낮췄다는 사실보다,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괜찮다”라는 말에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더 이상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고, 동시에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말이 없다면 사람은 두 극단 중 하나로 기울기 쉽다. 계속 자신을 채찍질하거나, 아예 손을 놓아버리거나.
이 심리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에게서 특히 자주 나타난다. 끝까지 해내고 싶지만, 모든 기준을 지키기에는 이미 지쳐 있다. 이때 “이 정도면 괜찮다”는 말은 스스로에게 주는 임시 허가증처럼 작동한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여기서 멈춰도 된다는 허락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말이 항상 나쁜 선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때로는 과도한 기준에서 자신을 구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계속해서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는 아무것도 지속하기 어렵다. 그럴 때 이 문장은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브레이크가 된다.
문제는 이 말이 반복될 때 생긴다. 처음에는 상황에 맞춘 조정이었는데, 점점 모든 선택 앞에서 자동으로 등장한다. 그 순간 “이 정도면 괜찮다”는 판단이 아니라 습관이 된다. 기준은 점점 흐려지고, 나중에는 왜 이 정도가 괜찮은지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이 장면을 계속 보다 보면 한 가지가 보인다.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 이 말을 쓰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이 말을 쓴다는 점이다. 선택을 감당하기 위해, 지금의 자신과 타협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 말에는 거짓보다 피로가 더 많이 담겨 있다.
“이 정도면 괜찮다”라고 말하는 순간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다만 그 말이 나를 쉬게 하고 있는지, 아니면 나를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게 하고 있는지는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 같은 문장이라도 맥락에 따라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사람은 언제나 최선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선택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납득이 필요하다. “이 정도면 괜찮다”는 말은 그 납득의 언어다. 중요한 건 그 말 뒤에 무엇이 남는지다. 안도감이 남는지,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 찜찜함이 남는지.
이 문장이 자주 떠오를수록, 삶은 느슨해질 수도 있고 지속 가능해질 수도 있다. 차이를 만드는 건 선택의 크기가 아니라, 그 말을 꺼내게 만든 마음의 상태다. 그래서 이 문장은 가볍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말은 아니다.